OST [친구 2001] Theme, In Memorium (인 메모리엄) - 준석이 이강환 일대기

[1] Movie [Friend] (2001) OST 'In Memorium' composed by Luc Baiwir (뤽 베위르)
voice by Susan Gonzalez (수잔 곤잘레스)


[2] 칠성파 30년 두목 준석이 '이강환'의 일대기 - 이야기창고 (2022.5.8)


[3] 영화 '친구'의 한동수의 마지막 유언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2001)


2001년의 한국 영화 '친구'에서 시작부에 나오는 음악이 'In Memorium'(추모하며)이다. 원래의 영어 표기는 'In memoriam'으로 'In memoriam'은 in memory of (someone who has died) '죽었던 누군가를 기억하며' 이다. 작곡가는 라틴어를 좋아했는지 철자를 'a' 대신에 'u'를 썼다.

Memorium 이란 단어 속에 'Memory'를 찾을 수 있어 '추억 속에서'라고 해석을 할 수도 있지만 실제 음악은 추모곡으로 슬프게 연주가 된다. 초반부터 영화는 두 친구의 어린 시절의 '추억'보다는 결국은 '추모'하는 현실을 슬프게 보여준 음악이 된다.

현실에서 친구의 의미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고 나중에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된다. 이런 것에서 명언들은 늘 한 명의 진실된 친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본인의 학력과 집안 환경, 자신이 가진 직장과 그에 따른 수입으로 친구의 유무가 결정되어 버린다.

'친구' 관계에서도 유유상종. 나이가 들면 내가 잘 살거나 내 직업이 좋아야 친구도 유지가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친구란 자신이 가진 것이 많고 적음과 현실적 이익에 따라 따라 정해짐을 벨기에 작곡가 '뤽 베위르'도 인지하고 과거의 학창시절 두 '친구'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실제 경쟁 구도에서 죽여야 하는 현재를 추모한다 (In Memorium)는 생각으로 음악 제목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어릴 때 아버지가 깡패라서 늘 집안이 어지럽고 선생님께도 더 맞은 준석.
아버지의 직업이 '장례사'라 자신도 늘 시체를 염하는 것이 싫었던 동수.
같은 병자(病者)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란 의미의 '동병상련'(同病相憐;)은 학창시절에 둘을 친구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의 조폭 영화 '친구'에서 보여주는 건 순진했던 어린 시절의 친구가 아닌 현실에서의 친구가 만나 해결해야 할 문제를 다루었다. 현실에서 친구란 희미한 색깔로 퇴색되고 조폭 세계로 들어간 둘은 서로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반대파의 '적'이라 옛날의 친구도 죽임에 있어 결단을 내려야 내가 사는 처지이다.

미국의 조폭 영화 '대부' 속에서도 뉴욕의 이탈리아계 조폭들은 가족 간에서 서로 죽이는 문제가 주된 스토리이다. 한국의 조폭 영화 '친구'도 가장 근접한 인간관계에서 싸워야 할 적이 있었던 셈이다.


'In Memorium'을 작곡한 음악가는 'Luc Baiwir'(뤽 베르위)로 1958년생에 벨기에 사람이다.

영화 친구의 감독 '곽경택'는 1980년대 부터 작곡을 시작한 뉴에이지 풍의 신디사이저 벨기에 음악가와 한국의 영화음악 작곡가 최만식은 서로 음악을 공동담당해서 뤽 베위르의 '메모리엄'과 최만식의 '제네시스'가 모두 비슷하게 들리는 입장이다.

뤽 베위르가 시작 도입부 곡 'In Memorium'을 맡았다면 마직막 엔딩부의 곡 'Genesis'란 곡은 한국 작곡가 '최만식'이 맡았다.

[1]번 음악이 뤽 베위르가 작곡한 '인 메모리엄'의 단독곡이고 [3]번 MV영상은 초반에 '인 메모리엄'이 나오다가 후에 동수가 비오는 날 기습당하는 모습에서 '최만식'이 작곡한 '제네시스'가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나온다.

한국은 이 영화의 소재가 된 부산 지역은 두 라이벌 조폭 조직의 칠성파의 두목이 2023년 7월에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장례식에서도 싸움이 날까봐 경찰들도 주의깊게 관망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조폭들의 싸움보다 길거리에서 아무도 일면식 없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보다 잘 사는 모습이 싫어서 칼을 휘두르는 사건이 2023년 7월부터 벌어진다.

조폭들 간의 싸움이야 서부시대의 총잡이들 권총 대결로 무법자들끼리의 싸움으로도 볼 수가 있지만 이제는 버림받고 아무런 직업이 없는 일개 개인들이 이런 사회에 대한 불만을 자신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길거리에서 죽이는 범죄가 자행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런 비극적인 사회분위기가 조성된 것에 어디서부터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할까?

2023년 한국은 7월에 신림동 길거리에서 '조선'이라는 젊은이가 칼을 휘두르고 얼마 있지 못해 유사한 사건이 분당 서현역 백화점에서 '최원종'이란 20대가 칼을 휘둘렀다. 이 둘은 남들을 막 죽일 '분노'는 있었지만, 그냥 세상을 조용히 홀로 떠날 용기는 없었다.

서현동의 범인 '최원종'이 그의 잘 나가는 '형'과 자신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자기는 왜 이렇게 안될까?' 란 생각을 많이 한 것 것으로 보인다.

잘 나가는 주변의 누군가와의 비교. 동수는 준석에게 '조오련'과 '돌고래'의 수영을 얘기한다.

예전에 술자리에서 교수가 되려고 대학원에 다니는 지인이 말하길, 자신은 형들 두 명이 '의사'라서 자신도 어ㅗ쩔 수 없이 '교수'라도 해야 살 것 같다란 말을 했다. 현실은 이렇게 사람을 비교 대상과 경쟁을 시키게 된다.

사회는 '컴퓨터'의 발달에서 미니 '스마트 폰' 시대로 갔다. 폰의 등장으로 길거리를 걸으면서 폰을 보고 걷는 정도이다. 책을 보는 모습은 이제는 볼 수 없다. 책을 읽던 시대의 집중력은 폰에서 보이는 간편한 화면과 무수한 선악의 정보로 향하고 단순하게만 생각토록 한다.

2020년에 등장한 MZ들은 학교에서 본 교과서 말고 자신이 찾아서 본 책이 몇 권이나 될지 궁금하다. 꼰대세대들도 아마 책을 읽으려면 상당한 노력이 든다. 스마트 폰의 시대와 유튜브의 발전은 책을 통한 자기 생각을 못하게 하고 있다.

묻지마 길거리 살인에 대한 특별한 대안도 없이 매일 나오는 뉴스는 칼을 들고 다니다 범행 직전의 20~50대 남자들을 길거리에서 잡아들였는다는 소식을 지금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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